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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패션사] 1. 아이돌 필수 상식

posted Mar 02, 2012
 
 

앞으로 본 블로그에 종종 아이돌 패션사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그 워밍업 성격의 글로 안 읽어도 무방합니다. 귀찮으니 더 이상의 존대말은 생략한다. 
 

존대말도 가슴 속에 쓸어내릴 것이 없는 놈들이 쓰는 거다?

 

 
 
 

아이돌의 정의 : 현재의 좁은 정의를 중심으로

 
아이돌 패션사를 정리하기 앞서 아이돌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모두가 아이돌, 아이돌 그러는데 대체 아이돌은 무엇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한 때 문희준이 락 자격증이라도 따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고, 박근혜는 취업 자격증을 내놓자고 했는데 이해가 된다. 대체 아이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국내 가수들을 대상으로 아이돌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96년이고, 보급화된 것은 98년 이후다. 그 이전에는 ‘스타’라는 말로 퉁쳤으며 10대 스타, 댄스 가수, 또는 청춘 스타로 불렸다. 아이돌이라는 용어가 자리잡은 건 H.O.T.의 엄청난 성공 이후이며, 15년이 지난 지금은 여기서부터 발전한 수많은 그룹이 창궐하며 용어 역시 자주 쓰이고 있다.
 
가장 광의의 의미로 아이돌은 10대들이 좋아하는 스타를 의미한다. 과거 비틀즈, 앨비스 프레들리, 조용필 등이 아이돌로 이야기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재 최고의 아이돌로는 이 분을 꼽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돌의 의미는 변화했고, 이전에 비해 축소된 의미로 사용된다. 넓은 의미로 사용할 경우 10대 팬을 대상으로 돈벌이하는 젊은 연예인이 모두 들어가지만 점점 한정된 의미로 정착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돌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은 그 좁은 의미로도 충분히 많은 연예인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 때문이다. 2010년 대에 쓰이는 좁은 의미로서의 아이돌을 정의하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가수

아이돌은 이제 가수의 영역으로 완전히 정착되었다. 이 부분에서 일본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일본은 오히려 아이돌이 다양한 분야로 분화했기 때문이다. 주식, 농업, 만담, 오타쿠 등에서도 아이돌이 존재하는 것은, 아이돌을 매우 광의로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교적 큰 팬덤을 지닌 계층에서 바라보아도 탤런트, 그라비아, 성우, 아나운서 등 각 분야에서 아이돌이 존재한다. 물론 한국도 최창민, 장근석 등 특이 케이스는 있지만 이들조차도 아이돌보다는 배우로서의 인지도가 높다.
 

그룹

이제 솔로는 아이돌로 여겨지지 않는다. 90년대 말 데뷔한 최창민, 양파, 2000년대 초반의 보아, 세븐, 비 등은 아이돌 소리를 들었으나 최근 등장하는 솔로 가수들은 아이돌로 불리지 않는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부터 10대를 타겟으로 한 솔로가수의 비중은 많이 줄어들었다. 윤하의 경우는 원더걸스, 소녀시대와 시기가 겹치니 괜히 아이돌로 불렸지만 비교적 그 이미지가 약했고, 문화 아이콘으로서의 색이 짙은 장근석도 아이돌로 불리지 않는다. 아이유의 경우는 엄청난 히트로 아이돌로 주목받지만, 상대적으로 아이돌의 이미지는 적은 편이다.
 

기획

10대를 대상으로 하여, 일정 이상의 연습기간을 거쳐 컨셉을 명확히 한 그룹을 아이돌로 칭한다. 물론 비교적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가수도 있었고, (잼, 듀스 등), 멤버 개개인의 매력을 극대화해 그룹을 이룬 경우 (쿨, 룰라 등) 도 있었지만, 좀 더 과학적 경영을 기초로 한 기획의 확립은 H.O.T.를 통해 굳어졌다. 
 

연령

아이돌의 연령층은 10대로 거의 굳어진 상태이며 점점 더 어려지는 추세이다. 2000년 즈음까지만 해도 특정 멤버의 나이가 많거나 하는 정도는 있었으나 (G.O.D, 슈퍼주니어) 현재는 그런 움직임도 적은 편이다. 브라운 아이드 걸즈는 애초에 아이돌로 등장하지 않았다가, 어쩌다보니 아이돌로 편입했기에(…) 별개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 밖에도 많은 특징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상의 4가지를 협의의 현대 아이돌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4가지 특징으로 대부분의 합의를 이룰 수 있다.
 

[리빙포인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회처럼 날치기로 합의를 이루면 좋다

 
 
 

아이돌 세대론 : 서태지, H.O.T, 빅뱅이라는 분기점

 
다만 현대의 개념을 과거로 소급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현재의 아이돌은 상당한 완성도로 정착된 상태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는 그 나름의 역사가 있다. 때문에 현재의 아이돌 전성시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준 이들까지도 포괄적으로 보는 게 통시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이돌을 무 자르듯이 세대로 나누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한 사람의 인기 스타, 또는 인기 그룹에 의해 분절되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전하며 서로간에 영향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3세대 아이돌론이 주류다. 1세대는 H.O.T와 젝스키스를 필두로 한 초기 기획형 아이돌, 2세대는 보아, 동방신기를 기점으로 해외진출을 노리며 기획된 발전형 아이돌, 3세대는 느슨하게나마 장르 확립이 되어가고 있는 아이돌을 그냥 퉁쳐서 양산형 아이돌(…) 로 부르고 있다.

 

양산은 기본적으로 폄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모든 인간을 양산형으로 만드는 군대.


 
하지만 패션은 물론이고 음악계와 사회에 미친 영향으로 분류하자면 위 분류보다는 서태지, H.O.T, 빅뱅을 기점으로 분류하는 게 보다 정확하지 않을까 한다. 주요 분기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으며 전체적인 틀에서 볼 때 과학적 기획 속에서 비주얼을 바탕으로 한 브랜딩이 강화되고 있다.

 

1. 서태지 이후의 댄스그룹

서태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이유는 서태지가 단순한 연예인을 넘어 ‘문화 아이콘’이자 ‘트렌드 리더’였기 때문이다. ‘문화 대통령’이라는 칭호는 그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별칭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7년 삼성경제연구소에 의해 역대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평가 받고, 고 김대중 대통령도 수 차례 서태지를 언급한 것도 그의 지위를 보여준다. 

서태지 시대를 좀 더 확장시켜 보자면 당시는 현재 대중음악의 황금기 (물론 당시에는 댄스음악밖에 없다고 까였다…) 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음악이 태동한 시기였다. R.ef의 레이브, 노이즈의 하우스, 김건모의 레게, 듀스의 힙합, 터보의 디스코, 박진영의 흑인음악, 룰라의 이것저것 짬뽕(…)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왔다. 
 

당시 어른들의 시각은 그저 개판…


 
그 중에서 서태지가 유독 상징적이었던 이유는 타 그룹이 가지고 있지 않은 ‘아티스트’라는 지위를 획득하고 있는 유일한 가수였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가수들 역시 새로운 장르를 들고 나왔지만, 싱어송 라이터는 극소수였고, 듀스의 이현도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프로듀서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는 없다. 박진영 지못미(…) 또한 그들 중에서도 서태지는 교실이데아, 시대유감 등 유독 저항적 정서를 자주 드러냈다는 점 역시 차이다. 

이 시대 대중음악이 꽃피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음반산업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 기획에 있어서도 철저함이 부족했다. 때문에 어느 산업에서나 겪는 규모의 경제와 과학적 경영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SM으로 대표되는 대형 기획사의 등장을 낳게 되고, 10대를 위한 음악을 넘어 10대에 의한 음악시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2. H.O.T 이후의 10대 기획그룹


H.O.T 이후 본격적인 기획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기획은 있었다. 대표적인 유명 기획자로는 들국화, 신촌블루스, 김현철, 이소라를 배출한 김영 대표와 신승훈, 김건모, 박미경, 노이즈 등을 인기스타로 만드는 데 기여한 김창환을 들 수 있다. 룰라의 경우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를 조합시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그러나 SM은 일본식 시스템을 받아들여 음악보다 비주얼에 방점을 찍고, 10대 스타를 데뷔시키며 현재 아이돌 시스템 확립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DSP(당시 대성기획)의 아이돌(그룹 이름이다), 젝스키스가 등장했고, 기타 시류를 좇은 기획형 아이돌이 우후죽순 탄생한다. 
 

당시 어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고...


 
하지만 SM이 낳은 기획은 단순히 공식을 적용시키는 게 아니라 대중이 어떤 스타와 음악을 원하는지 기호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과학적 경영’이다. 마침 인터넷의 발전과 맞물려 음반시장의 붕괴가 일어나며 시류를 좇아 나온 아이돌 그룹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2000년 이후에는 오히려 아이돌 거품이 터지고 물갈이에 들어가며 발라드로 회귀하는 현상까지 보였다.

타 기획사가 공식에 얽매이며 움직이는 동안 SM은 뛰어난 기획력으로 2000년대 중반 동방신기, 슈퍼주니어로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여기에 기존의 음반 프로듀싱 경험과 10대 소비자의 니즈를 읽는 경영에 성공한 JYP, YG는 SM과 함께 3대 기획사로 거듭난다. 이미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던 DSP와 기존 기획사에서 독립한 인기 프로듀서를 무기로 삼은 기획사들이 늘어나며 좀 더 뚜렷한 컨셉을 가지고 시장에 진입하는 아이돌들의 시대가 열린다.

 

3. 빅뱅 이후의 일관된 컨셉의 브랜딩


2000년대 최고의 아이돌로 동방신기를 꼽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최근 둘로 쪼개지며 온갖 잡소리를 낳고 있는 동방신기지만, 이 그룹은 한중일 3국 모두에서 S급 스타 대접을 받는 유일한 아이돌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좀 더 큰 영향을 미친 그룹으로는 빅뱅을 꼽을 수 있다.

빅뱅으로부터 생기는 변화는 철저한 컨셉의 브랜딩이다. 기존 아이돌도 등장할 때마다 차별점과 컨셉을 내세웠지만 이게 하나의 브랜드 일관성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써클은 다국적 그룹을 표방했고 UN은 의대생 김정훈으로 고급스럽고 모범생스러운 느낌을 냈지만, 음악이나 패션 등에서의 차별성은 크지 않았다. 동방신기도 아카펠라(…)를 내세우며 가창력을 강조했지만, 노래 잘 부르는 아이돌이 지속적인 컨셉이 되기는 힘들었다. 
 

이 때 어른들은 이미 떡실신 포기 상태


 
이에 반해 빅뱅은 다른 그룹과 달리 미시적인 부분까지 신경쓰며 일관된 브랜딩을 구축해, 철저한 차별화에 성공했다. 그들은 시작에서부터 비주류 문화인 스트릿 컬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단순히 음악의 특정 장르를 소화하며 차별화를 이루고자 한 흐름에서 벗어나, 그룹 빅뱅 자체에 스트릿 컬처를 투영했다. 시부야 케이로 불리는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면서 패션 역시 여기에 맞게 구현했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이가 평소 생활에 녹아있음도 보여주었다. 

이는 이후의 아이돌에게 영향을 줘서, 각 그룹의 컨셉이 더욱 명확하게끔 했다. 2008년 이후 등장한 아이돌들은 나올 때마다 컨셉이 하늘과 땅을 오가던 기존 아이돌에 비해 2AM, 2PM, f(x), 2NE1, 포미닛 등 음악의 지향점이 보다 음악뿐 아니라 비주얼적인 지향이 보다 뚜렷한 그룹들을 낳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점은 패션과 아이돌의 접점에 큰 영향을 준다.

 
 

아이돌과 패션 : 서로 협업하며 점점 커져가는 영향력

 
아이돌은 패션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까? 답부터 내리자면 지금까지는 의외로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마 지금까지 상당한 영향을 준 아이돌이라면 저 멀리 서태지와 최근의 빅뱅 정도일 것이다. 이외에 H.O.T, 젝스키스, 샤이니, 소녀시대, 2NE1 등 알토란 같은 영향을 준 그룹도 있지만 이들은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에 영향을 미쳤을 뿐, 주도적인 트렌드를 이끌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서태지도 트랜드를 발굴하고 이끌어낸 적은 4집에서의 스노우보드 패션 정도이다. 
 
당시 서태지의 영향력은 거의 역사상 최고의 연예인이었음에도 패션에서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던 이유는 연예 산업과 패션 산업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음으로 인한 한계에 있다. 서태지를 위주로 한 댄스가수에서부터 H.O.T와 젝스키스 등 초기 아이돌까지도 대부분 무대 의상은 생활 의상과 큰 차이가 있었다. NIX, STORM 등 몇몇 브랜드가 무대의상에 자사 상표를 부착해 재미를 봤지만, 무대의상과 상품 간의 괴리가 컸기에 단기 판촉이 장기적 브랜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흐름의 변화는 직접적으로 스트릿 패션 전도사에 나선 빅뱅과, 유명 디자이너 하상백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시장에 나온 샤이니 등에서부터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지금 보면 굉장히 오글거리지만 이 때 이들의 인기는 동방신기, 빅뱅 이상의 느낌…


 
이런 상황에서도 서태지의 4집이 패션계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이돌로는 매우 드물게 ‘아티스트’라는 코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아이돌과 달리 아티스트는 대중으로 하여금 좀 더 편하게 모방 욕구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이는 빅뱅도 마찬가지인데, 차이가 있다면 서태지는 음악의 원류가 록이기에 ‘반항의 정서’로 스스로를 무장했다면, 빅뱅은 좀 더 적극적으로 ‘소비문화’를 받아들이고 역으로 이를 ‘아티스트’라는 이미지 구축에 연결했다는 점이다. 
 
어느 쪽이든 시대의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도 하겠지만, 패션에의 영향력을 보자면 빅뱅 쪽이 확실히 크다. 빅뱅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하이 패션으로서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뱅 멤버들 스스로 패션과 브랜드의 홍보 역할을 전혀 주저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팬들 역시 지드래곤에게 직접 루이비통 하이탑을 선물하는 등 브랜드와 패션 아이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까칠한 대한민국에서 아이돌이 아티스트 타이틀을 쥐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이런 현상은 다양한 아이돌에게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아이돌 공항패션 찍히는 것만 해도 하루 한두 건이 아닌데(…)
 

아무 관계 없지만 '숨막히는 뒤태'의 주인공 박성기 기자


 
현재 패션계에서는 아이돌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향후에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아이돌 산업이 양적으로도 팽창했지만 패션 브랜드와 아이돌이 긴밀하게 연계될 통로가 넓어졌다. 최근의 아이돌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뚜렷한 컨셉을 가지고 등장하고 있으며, 패션 브랜드 역시 단순한 PPL을 넘어 서로간의 브랜드를 연결, 강화하기를 원한다. 이에 따라 아이돌의 컨셉과 맞는 패션 브랜드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고 있다. 또한 기존 아이돌의 팬층이 20대, 30대로 성장하고 현재의 주요 팬층인 10대의 소비력이 커진 점 역시 아이돌이 패션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반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지난 30년간 아이돌과 패션의 역사를 크로스해 보고자 하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내용도 뭔가 어줍잖고 미괄식이라 미안하지만 맨 첨에 안 읽어도 무방하다 했으니 너무 까대지는 마(…)
 

글쓴이는 천재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힘...


 
워밍업은 이쯤 하고 다음 회에서는 서태지 이전 아이돌이라 불릴 수 있는 가수들이 패션에 영향을 미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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